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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학문_막스베버_이상률 역_문예출판사

jemandniemand 2021. 1. 24. 17:10

 

목차

직업으로서의 학문
부록_국민국가와 경제정책(프라이부르크대학 교수 취임 강연)
옮긴이의 말

 


 

24쪽

여기서 우리는 학문의 의미문제Sinnproblem에 당면합니다. 

왜냐하면 진보라는 그러한 법칙에 복종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사실이 별로 자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학문 자체를 위해서' 학문에 종사한다고

 

주지주의화Intellektualisierungsprozeß

세계의 탈주술화

 

그러면 서구문화에서 몇천 년 동안 계속되어온 이 탈주술화과정과 일반적으로 말해서 과학이 그 일부분인 동시에 추진력으로서 속해 있는 이 '진보'가 이처럼 순수하게 실용적이고 기술적인 것 이외에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갖고 있습니까? 

진보 속에 있는 자 앞에는 변함없이 앞으로 나가는 것만이 있습니다. 죽음의 무의미성

문화생활이 죽음을 의미 없는 것으로 낙인찍는 이유는 바로 그 자신의 의미 없는 '진보성' 때문입니다. 

 

더이상 학문에 대한 소명을 묻는 것, 요컨대 학문에 몸을 바치는 자에게 있어서 직업으로서의 학문은 무엇을 뜻하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이미 다른 것을 묻는 것 - 인간의 생활 전체 속에서의 학문의 사명은 무엇이며 또 그것의 가치는 무엇인가를 묻는 것!!

오늘날의 학문이라는 사유 구성물은 인위적인 추상들의 비실제적인 왕국이며, 이 인위적인 추상들은 그 마른 손으로 현실 생활의 피와 활기를 낚아채려고 하지만 결코 성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자신의 본성 그리고 이와 함께 자연 일반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학문의 주지주의로부터 빠져나올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학문의 성과는 사실 자체는 아무래도 상관없고 실천적인 입장만이 중요한 사람에게는 결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요?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의 첫 번째 임무는 학생들에게 불쾌한 사실들을 인정하는 법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학문은 오늘날에는 우리 자신에 대한 자각과 사실관계의 인식에 이바지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행해지는 '직업'이지, 구원재와 계시를 주는 예견자나 예언자로부터 받는 은총의 선물이 아니며 또한 세계의 의미에 대한 현인과 철학자의 성찰의 일부분도 아닙니다. 

 

현대의 많은 지식인들은 자신의 영혼을 소위 진짜임이 보증된 골동품들로 장식해서 채우고 싶은 욕구를 갖고 있으며, 그러한 장식품으로는 예전에 미처 가져보지 못했던 종교도 적합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이것은 단순히 사기이거나 아니면 자기기만입니다. 

이에 반해, 최근 몇 년 사이에 조용히 늘어난 저 청년단체들 중 적지 않은 단체들은 그들 자신의 인간적인 공동체관계에 종교적이거나 우주론적인 또는 신비한 관계로 해석하고 있는데, (...) 순수하게 인간적인 공동체관계의 가치가 그러한 종교적 해석에 의해 증대되는지는 나로서는 의심스럽습니다. --> 형제애와 초월주의 간 간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