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책머리에
서문
1장_ 공연
2장_ 팀
3장_ 영역과 영역 행동
4장_ 모순적 역할
5장_ 배역에서 벗어난 의사소통
6장_ 인상 관리의 기술
7장_ 결론
감사의 말 / 옮긴이의 말 / 추천사
책머리에
나는 물리적으로 한정된 공간 안에서 조직되는 사회생활을 사회학적 관점으로 연구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
실제 사회조직체에 두루 적용할 수 있는 분석틀을 구성하는 데 적합한 일련의 특성들을 기술하고자 한다.
이 책은 연극 공연의 관점을 택해 쓰였다.
서문
상황. 사람, 사람들이 있는 자리. = 상호작용을 하는 시간과 공간
욕망.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 함. 그 이유는 실용적인 동기에서. 정보는 상황을 정의할 수 있게 함.
행위. 정보에 따라 행동하며, 정보전달 매체(신호수단sign-vehicles)을 사용함. 상호작용하는 동안 직접 경험해보고 검증할 시간적 공간적 여유가 없을 때가 잦다. 그러므로 맞닥뜨리게 되는 사건들을 직접 감지할 수 없는 무언가의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신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개인은 스스로를 표현express하는 행동을 하게 마련이고, 다른 사람들도 그가 표현한 인상impress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개인의 표현력은 근본적으로 다른 두 가지 신호 행동, 즉 명시 표현the epression that he gives과 암시 표현the expression that he gives off으로 나타난다. 명시표현이란, 개인이 명백하게 오로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자타가 모두 무슨 뜻인지 아는 언어 상징이나 대체 신호를 사용하는 행동이다. 암시표현은 다른 사람들이 행위자의 됨됨이를 판단할 만한 것으로, 행위자가 정보 전달 이상의 의미가 전해지기를 기대하면서 하는 다양한 행동을 표현한다. 암시 표현에는 위장이 포함된다.
다른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개인이 하는 행동에는 약속promissory의 성격이 있다. 그가 그들 앞에 있는 동안에는 그의 언행을 믿고 합당한 답례를 해야 함을 안다. 우리는 추론inference에 따라 살아간다. 당신은 내가 당신의 것을 훔치지 않으리라 추론하고 나는 당신이 나를 손님으로 대하리라 추론한다. 개인이 염두에 둔 목표와 동기가 무엇이든, 그의 관심사는 다른 이들의 행동, 특히 자기를 대하는 다른 이들의 반응을 통제하는 데 있다. 통제는 대개 그가 다른 사람들이 상황을 정의definition of the situation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달성된다. 자기에게 유리한 인상을 조성하려는 동기가 있게 마련이다. 오로지 남들이 자기가 원하는 반응을 보이도록 개인은 철저하게 계산된 인상으로 자기를 표현할 때가 있다(계산한다는 의식 없이 계산된 언행을 할 때를 포함, 전통에 따라 정제된 인상으로 개인의 역할을 보여주어야 할 때도)
사람들이 통제하기 힘든 행동을 단서로 통제하기 쉬운 행동을 검증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 가능성을 활용해 확실히 믿을 만한 행동으로써 자기가 의도한 인상을 전하려고 한다. 어떤 이들은 그런 시험이 벌어짐을 알고 멀리서부터 미리 사교적 표정을 지음으로써 한결같은 이미지를 유지하려고 한다. 이런 종류의 통제가 의사소통 과정의 대칭성을 복원하고 '감추기-발견하기-위장하기-재발견하기'가 무한 순환되는 정보 게임의 무대를 제공한다. 그러나 정보게임이 몇 단계에 걸쳐 이루어지든, 목격자는 행위자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유하므로 의사소통 과정 초기의 비대칭성이 유지된다. 보통 상황 정의에서는 여러 참여자들이 충분히 조율하기 때문에 공개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는다. 각 참여자가 잠시나마 다른 사람들이 수긍하리라고 여기는 관점을 택하고, 자신의 솔직한 느낌은 억누른다는 뜻이다. 우리는 일종의 상호작용적 타협 방식modus vivendi을 갖고 있는 셈이다. 나는 이런 수준의 동의를 '잠정적 합의working consensus'라 부를 것이다.
대개 첫 정보the information that the individual initially possesses를 토대로 상황을 정의하고 대응노선을 정한다. 상호작용이 진전될수록 초기 정보는 물론 수정 보완되지만, 본질적으로 처음 취한 입장과 어긋나지 않고 그 토대 위에서 발전되기도 한다.
개인이 처음에 투영한 상황 정의가 그의 후속 협력 활동을 계획하게 한다는 행동의 관점을 강조하려면, 상황 정의에 독특한 도덕적 성격이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의 주된 관심사가 바로 상황 정의에 담긴 도덕적 성격moral character이다. 자신이 어떤 사회적 특성을 갖고 있음을 암시하거나 명시하는 사람은 스스로 그 주장과 일치하는 인물이 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투영한 상황 정의에 맞춰 스스로를 암시하거나 명시한 사람은, 다른 이들에게 자기와 같은 부류에게 합당한 방식으로 자기를 평가하고 대우하라고 도덕적으로 요구하는 셈이다. 자기가 어떤 사람이며 자기를 어떤 특성이 '있는' 사람으로 봐주어야 하는지를 알아차리게끔.
예방조치는 당황스러운 사태를 피하기 위해 항상 마련된다. 개인이 투영한 상황 정의를 지키기 위해 택하는 전략과 전술을 '방어 기법defensive practice'이라 하고, 상대가 투영한 상황 정의를 살려주기 위해 기인이 택하는 조치를 '보호 기법protective practice' 또는 '요령tact'이라 한다. 우리는 방어 기법을 발휘하지 않으면 어떤 인상도 보존되지 못한다는 사실은 즉각 알아차리지만, 상대가 요령을 발휘해주지 않으면 거의 보존될 인사잉 없다는 사실은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상황 정의의 혼란을 막기 위해 예방조치가 이루어진다는 점과 더불어, 혼란에 대한 강렬한 관심이 집단의 사교 생활에서 중요한 작용을 한다는 점도 지적해두자. 대수롭지 않은 혼란일 경우에는 의도적으로 짓궂은 농담과 사교 게임이 연출된다. 아주 충격적인 폭로가 있을 때는 환상이 창조되기도 한다.
이제 요약해보자. 사람들이 자신의 인상을 유지하기 위해 흔히 택하는 기법들과 기법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보편적 상황 조건이 이 책에서 다루는 주된 관심사이다. 개인 참여자의 구체적 행동 내용이나, 사회 체계의 작동에 상호의존적 행동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다루지 않는다(the specific content of any activity presented by the individual participant, or the role it plays in the interdependent activities of an on-going social system, will not be at issue). 이 책은 개인이 남들 앞에서 행동할 때 택하는 극적 연출의 문제만 다룬다. 사회적 역할을 사회적 지위에 부여된 권리와 의무의 실행이라고 정의한다면, 사회적 역할에는 배역이 하나 이상있음을 알 수 있다.
공연performances
1. 배역에 대한 믿음
개인의 공연이란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대중적 관점이 있다. '진실하다'는 말은 공연에서 스스로 조성한 인상을 진지하게 믿는 사람들에게 들어맞는다고 생각한다. 냉소적인 사람은 자기의 모든 직업적 의무를 방기한 채 직업 윤리에 어긋난 가면극을 즐긴다. 한 사례로, 동정심이 많은 정신병동 환자들은 간호 실습생이 자신들을 정상으로 진단하고 실망할까 봐 일부러 괴상한 증세를 꾸며낼 때도 있다(1).
사람person이라는 단어의 첫 번째 뜻이 '가면persona/mask'라는 게 역사적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역할을 통해 서로를 안다. 우리 스스로를 아는 것도 역할roles을 통해서다. 역할에 맞는 행동을 하려고 분투하면서 우리가 구축해온 스스로에 대한 관념을 가면이라 한다면, 가면은 우리의 참자아, 우리가 되고 싶어하는 자아다. 우리는 한 개인으로 이 세상에 들어와, 성격을 획득하고, 그러면서 사람이 된다.
현지 연구 민속학자들에 의하면 대체로 속임수를 쓰는 무당들조차 속임수임을 알면서도 자신들의 마력, 특히 다른 무당들의 마력을 믿는다.
2. 앞 무대
공연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보편적이고 고정된 양식에 따라 상황을 정의하게끔 하는 개인의 공연 부분에 대해서 편의상 '앞무대front'라 부르겠다. 그러면 앞무대는 공연에서 개인이 의도하거나 자기도 모르게 택하는 전형적 표현 장치에 해당된다.
기초작업으로 앞무대의 전형적 구성요소들을 구분하고 이름을 붙여보겠다.
첫째는 '무대장치setting'이다. 공연자들은 그 자리에 들어서야 공연을 시작할 수 있고 공연이 끝나면 그 자리를 떠나야 한다. 무대장치가 공연자를 따라 이동하는 경우는 예외 상황일 때뿐이다.
둘째, '무대장치'가 표현 장치 가운데 배경이 되는 부분이라면, '개인 앞무대personal front'는 공연자와 즉각 동일시할 수 있고 공연자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당연히 따라다니는 항목들이다. 공연자의 개인 앞무대에 속하는 항목에는 직책이나 직위를 나타내는 표지, 복장, 성 연령 인종 특성, 체구와 태도, 말투, 표정, 몸짓 따위가 있다. '겉모습appearance'은 개인의 의례 상황을 알려준다. 몸가짐manner는 앞으로의 상호작용 상황에서 공연자가 어떤 역할을 연기할지 예상할 수 있게 해주는 요소다.
우리는 겉모습과 몸가짐의 일관성 뿐만 아니라, 겉모습, 몸가짐, 무대장치의 일관성도 어느 정도 기대한다. 앞무대가 전달하는 정보의 중요한 특성, 이른바 정보의 추상성과 보편성을 알아두는 게 좋다. 보는 사람은 더러 손해를 볼 때가 있을지라도 그러는 편이 훨씬 편하다. 상황을 넓은 범주에 넣으면 손쉽게 과거 경험과 고정관념을 동원할 수 있다. 그러고는 그저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몇 가지 간소한 앞무대 관련 어휘와 대처 방법만 익혀두면 된다. 여러 종류의 다양성을 결정적으로 중요한 몇개 범주로 줄이고 그 범주에 드는 이들에게 동일한 사회적 앞무대를 허용하거나 의무화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특정한 사회적 앞무대는 상투화된 추상적 기대로 제도화되어 어느 한 시점의 구체적 업무와는 별도의 의미와 안정성이 생기기도 한다. 앞무대가 '집합적 표상'collective representation이자 본질적 속성이 되는 것이다. (...) 앞무대는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선택되는 것이다. 매우 상이한 여러 앞무대 가운데서 적합한 유형을 선택해야 할 때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지금까지 나는 사회적 앞무대는 통상 무대장치, 겉모습, 몸가짐으로 구분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동일한 앞무대로 상이한 형태의 배역 연기가 공연되기도 하므로 공연의 구체적 성격과 통상의 사회화된 모습이 완벽하게 일치하지만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3. 극적 효과의 실현
자기 행동을 남들이 중요하게 받아들이게 하려면, 개인은 상호작용을 하는 동안 자기가 전하고 싶은 의사를 표현할 행동을 해야 한다.
핵심 업무를 극화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지위가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실제인물이든 가공 인물이든, 그 본보기를 잘 보여준 사람들은 유명 인사가 되고 환상을 상업화한 작품에서 특별한 위상을 누리기도 한다.
그러나 업무를 극화시키기 어려운 경우가 더 많다. (...) 서비스업종, 서비스를 고객이 볼 수 없기 때문. 업무의 의미를 담당자가 원하는 대로 표현하기에는 그의 지위가 너무 미미할 때가 있다. 의사소통에 공을 들이는 행동은 종종 극화하려는 내용과는 별도의 속성을 필요로 할 때가 많다. 방송에서 격의 없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하려는 사람은 이야기의 내용, 말투, 리듬,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문장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살피고 공들여 각본을 짜야 한다. 그처럼 사람들은 종종 표현을 택할지 아니면 행위를 택할지 선택의 딜레마에 빠진다.
4. 이상화
공연자들은 여러 방식으로 이상화idealization된 인상을 보여주려는 경향이 있다. 개인이 남들 앞에서 자신을 연출하는 공연은 그의 행동 전체에 비해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된 가치를 더 많이 포함하고 입증하려는 경향이 있다. (...) 스스로 수락할 수 있는 수준보다 낮은 지위를 부여받은 사람이 그 낮은 지위에 함축된 이상적 가치를 잘 연기해내는 사례도 있다(55-59, 빈곤쇼, 흑인, 여성, 쓰레기 수거업자 등). 이런 인상에는 이상화된 측면이 있다. 공연이 성공을 거두려면 불운한 빈자에 관한 관찰자의 극단적 고정관념에 들어맞는 장면을 공연자가 실감나게 보여주어야 한다. (...) 개인이 공연에서 이상적 기준을 표현하려면 그 기준과 어긋나는 행동은 그만두거나 감추어야 할 것이다. 표현 기준에 어긋나지만 어떤 식으로든 만족감을 주는 행동이면 몰래 즐긴다.
개인이 공연을 할때는 대개 부적절한 쾌락이나 가계 형편 말고도 감추는 것들이 더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감추는 것 가운데 몇 가지를 보자.
첫째, 은밀한 쾌락과 가계 형편, 이와 더불어 공연자는 관객에게 숨기고, 자기가 관객에게서 구하려는 관점에 어긋나는 이득을 얻으려 행동하기도 한다. (본보기가 담배와 복권을 함께 파는 잡화점)
둘째, 공연자는 공연을 시작하기 전에 잘못과 실수를 바로잡는 한편, 그 내막이 드러날 신호들을 감춘다. (자기가 먼저 보고서를 훑어보고 결점을 고치고 싶어하는 경우)
셋째, 개인이 상대방에게 제품을 보여줄 때는, 마감 처리가 잘되고 포장이 잘 된 완제품만 보여주고서 상대가 자기를 판단하도록 유도하려는 경향이 있다. (세련된 편집으로 나온 책 뒤편에는 제 시간에 색인을 완성하기 위해 저자가 감내한 고되고 지루한 작업, 또는 책 표지에 인쇄될 저자 이름의 활자 크기를 놓고 저자와 출판사가 벌인 말씨름 따위가 있었을는지 모른다)
넷째, 겉모습과 실체의 전모가 불일치한 경우가 있다. (지저분한 일을 아무도 없는 데서 혼자 하든, 하인에게 시키든, 시장을 이용하든, 우리는 그 모든 증거를 관객에게 숨기는 경향이 있다
다섯째, 지저분한 일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겉모습과 실체가 불일치하는 사례가 하나 더 있다. 둘 중에 하나를 포기해야 하면, 감추기 쉬운 것을 포기함.(속도>품질. 품질 낮추고 감춤)
여섯째, 공연자가 종종 자신은 배역을 맡아야 할 이상적 동기와 자격이 충분해 그 배역을 얻기 위한 수모나 모굑, 창피를 견디거나 '거래'로 보일 짓을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는 인상을 조성하려는 경우가 있다. (자격증을 갖춘 전문가란 학습 경험을 통해 보통사람들과는 격이 다른 사람으로 재탄생한 존재라는 인상을 조성하려는 수단이기도 하다. (...) 성직자들 역시 천직으로서의 소명의식을 느껴서 교회에 몸담게 되었다는 인상을 주려고 한다. 기업의 경영진은 종종 역량과 상황 장악력을 지닌 존재로 자신의 모습을 연출한다.)
이와 더불어, 공연자는 자신이 관객들과 실제보다 훨씬 이상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믿음을 관객에게 환기시키곤 한다.
첫째, 사람들은 현재 공연하는 배역 연기가 자신의 유일한, 적어도 가장 본질적인 면모라는 인상을 조성하곤 한다. '관객 분리audience segregation' 여러 배역 가운데 어느 한 배역을 연기할 때의 관객이 다른 무대에서 다른 배역을 연기할 떄의 관객이 되지 않도록, 공연자는 확실하게 관객을 분리한다.
둘째, 공연자들은 그들의 공연과 관객의 관계가 매우 특별하고 독특하다는 인상을 주려는 경향이 있다. 공연의 상투적 성격은 감추고, 상황의 자연발생적 측면을 부각하는 것이다. 이 같은 공연의 특성은 상거래 영역에서도 '차별화된 서비스'라는 명목으로 악용되어왔다. (고객 배역을 할 때는 우리도 공연자로서 '여기저기 둘러보지 않았고' 다른 곳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는 인상을 주려는 요령을 부린다) 우리가 이처럼 어리석은 '사이비-정서공동체gemainschaft'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아마도 죄책감 때문일 것이다.
5. 표현 통제의 유지
의사소통이 빗나갈지도 모르는 사태에 대비해, 공연자들은 일종의 제유법(일부로 전체를 나타내는 비유법)을 쓰기도 한다. 효과가 있든 없든, 될 수 있는 한 사소한 사건을 공연에 많이 포함시켜 결국 관객에게 아무런 인상을 남기지 않거나 전반적 상황 정의와 대체로 일치하고 어울릴 수 있는 인상을 조성하는 것이다.
의도치 않은 몸짓들 가운데, 우리 사회의 다양한 공연에서 매우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공연에서 조성되는 인상과 너무나 동떨어진 인상을 전해주는 몸짓 때문에 부적절한 사건이 집합적 상징의 지위를 획득하기도 한다. 그런 사건은 대략 세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공연자가 순간적으로 근육 통제력을 잃은 나머지 뜻밖의 무능함, 부적절함, 무례함을 드러낼 수 있다. 둘째, 공연자가 상호작용에 과도한 관심을 보이거나 아니면 너무 무신경하다는 인상을 주는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셋째, 공연자가 부적절한 방향으로 자기를 연출하느라 애를 먹기도 한다(2).
우리는 성스러운 상황에서 요구되는 일관성을 알고 있다. (...) 어쨌든 우리는 연구자로서 잘못 쓴 단어 철자와 스커트 밖으로 삐져나온 속치마 때문에 생기는 부조화를 연구할 수 있어야 한다. 요컨대, 공연이 조성하는 실체의 인상이란 아주 사소한 불운으로도 산산조각 나는, 약하고 깨지기 쉬운 것이라는 사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 공연은 표현의 일관성을 필요로 한다. 이 사실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우리의 자아와 사회화된 우리의 자아 사이에 결정적 불일치가 있음을 알려준다. 정해진 시간에는 어김없이 완벽하게 똑같은 공연을 한다고 믿을 수 있는 일종의 정신의 관료화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상상의 관객을 향해 독백을 하고 우리와 분리할 수 없는 부분을 옷차림으로 덮듯 우아하게 자신을 감싼다. 우리는 그렇게 치장하고서 갈채를 유도하고 우주의 침묵 가운데서 죽기를 바란다. 우리가 믿겠다고 서약한 종교를 서약대로 믿으려 노력하듯이, 우리가 주장한 대로 세련된 감성에 맞추어 살기로 한다.) 그런 자세는 어떤 부분은 감추고 어떤 부분은 드러내도록 직접 몸을 조이는 죔쇠의 도움을 받아야 지킬 수 있다.
6. 위장
우리는 고의로 자기 삶 전반에 위장을 일삼는 사기꾼 같은 이들은 가혹한 시선으로 본다. 반면에, 단 하나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데 그 약점을 인정하고 명예를 만회해보려 시도하는 대신 애써 감추려는 이들, 이를테면, 전과자, 순결을 잃은 처녀, 간질환자, 혼혈인에 대해서는 얼마쯤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우리는 소속 집단의 당연한 요구라고 느껴 자신을 위장하거나 장난삼아 자신을 위장하는 사람들은 물질적 심리적 사익을 위해 자신을 위장하는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여긴다.
'지위' 개념이 명료하지 않기 때문에 인물의 사칭이라는 개념도 명료하지 않다. 능력의 기준이 객관적인 것도 아니고 진짜 전문가라는 주장도 확인하기 어려운 것이다. 더 나아가, 누군가가 개인 앞무대를 수정하면 사람들은 한동안 그것을 위장이라고 느끼지만 몇 해가 지나면 장식용이려니 여기기도 하는데, 이런 부조화는 우리 사회의 여러 하위 집단에서 언제든 찾아볼 수 있다.
일상 삶에서는 공연자가 뻔히 드러날 거짓말로 궁지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거짓 인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빗대어 말하기, 모호성 전략 취하기, 결정적인 말 생략하기 따위의 의사소통 기법은, 엄밀히 따지면 딱히 거짓말이라 할 수는 없는 말로 왜곡된 정보를 전하는 사람이 이득을 누리는 방법이다. 진실이라고 해도 관련 사항을 일일이 다 말하는 게 공공의 이익에 바람직하지 않고 또 필요하지도 않을 때가 있다.
더욱 중요하게는, 합법적 직업이나 일상 관계에서 공연자가 겉으로 조성해놓은 인상과 맞지 않는 숨겨진 관행이 존재하지 않는 공연이란 거의 없다. 다룰 문제가 많을수록, 역할이나 관계에서 맡은 배역이 많을수록, 행위자가 비밀로 해야 할 것도 많다.
잠정적 합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공연자의 충분한 자제력 발휘가 필요하다. 어떤 사실은 부각하고 어떤 사실은 감춤으로써 이상화된 인상을 연출해야. 그리고 공연자가 표방한 공연 목표보다는 관객이 오인할 수도 있는 사소핮 부조화에 더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표현의 일관성이 유지되어야 한다...그렇다면, 일반적으로 활동에 대한 표현은 활동 자체와는 어느 정도 다를 것이고 그러니 위장이 불가피한 셈이다.
그런데 공연자가 조성한 인상과 관객에게 보이지 않으려는 인상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참된 실체인지 가려낼 필요조차 없는 사회학적 쟁점이 많다. 우리의 관심은 (어느 쪽이 참된 실체인지보다) 어떤 종류의 실체가 조성된 인상을 깨뜨리는지 알려는 데 있다. 진실을 전하고자 하는 정직한 공연자든 허위 사실을 전달하려는 부정직한 공연자든, 그들 모두가 공연에서 적합한 표현은 강조하고 인상을 망가뜨릴 표현은 배제해서 관객이 의도치 않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7. 신비화
관객이 받아들일 정보를 조절하는 데 실패하면 상황 정의가 무너질 수 있고, 관객의 접촉을 조절하지 못하면 공연자의 의례가 오염될 수 있다. 접촉 제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관객에게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고 유지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은 널리 퍼져 있다. 이같은 입장에 함축된 논리는 관객이 공연자를 보지 못하게 막게 될 때, 공연자의 뛰어난 자질과 권력을 보여주는 것이 효력을 발휘한다는 것. 물론 사회적 거리 지키기에 관객 역시 공연자에게 부여된 성스러운 소속에 경외심을 드러내고 존중하는 태도를 연기한다. (feat. 짐멜, 뒤르켐 ... '사람의 인성은 성스러운 것이다. 인성을 침해하지 않고 선을 넘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교감을 나누는 것이 가장 위대한 선이다' ) - 인성과 구별되는 자아...
자기와 관객 모두를 위해 가까이서 보면 파괴될지도 모르는 공연을 보호하고 위험에 대처할 수 있게 해준다.
8. 실체와 책략
사람들의 진실성과 그들이 보여주는 공연의 구조적 관계. 공연이 이루어지려면 목격자들이 대체로 공연을 하는 사람들의 진실성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진실성이 사건의 드라마에서 차지하는 구조적 위치가 바로 이 지점이다. 사람들의 됨됨이는 보통 겉모습으로 나타나지만 그런 겉모습 역시 관리될 수 있다. 그렇다면 실체와 겉모습의 관계란 통계적인 것일 뿐이라는 것. 완벽하게 거짓임에도 성공하는 공연이 있고, 완벽하게 정직해서 성공하는 공연이 있다(완벽하게 정직함에도 성공하지 못하는 공연이 있다).
이런 논의에는, 정직하고 진실하고 진지한 공연이 사람들의 생각만큼 견고한 실제 세계와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훌륭한 공연자가 되려면 심층적 내면 연기의 기법을 익히고(타고난 사람도 있다), 오랜 시간 훈련으 받고, 심리학적 소양도 갖추어야 한다. 일상의 사회적 상호작용 자체가 극적으로 과장된 행동, 반응, 반응 중단을 주고받는 무대로 구성되기 때문이다(3).
개인은 어떤 배역을 맡든, 그 배역을 '채울' 만큼 표현법을 충분히 익혀두기만 하면 된다. 일상 삶의 진솔한 공연은 개인이 할일이 무엇인지 미리 알고 똥 ㅝㄴ하는 효과를 겨냥해 '연기'하는 '연출'된 공연이 아니다. 요컨대, 우리는 모두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연기를 잘한다. '습관적으로 기량을 발휘한다'는 말.
상이한 사회 집단들은 나이, 성별, 지역, 계급 지위 같은 속성을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며, 그 적나라한 속성들을 나름의 독특한 문화적 복합체로 잘 다듬어 적절한 처신으로 삼는다는 사실은 상식에 속한다. (...) 지위, 직위, 사회적 위치는 소유하고 과시할 수 있는 물질이 아니라 일관성 있고, 미화되고, 적절하게 다듬어진 품행의 일종이다. (...) 직업인의 존재 조건은 전적느로 의례의 한 요소다.
(1) 해리 스택 설리번Sullivan은 장기 입원 환자의 요령이 일종의 귀족적 의무감이라는 정상적인 정신 상태를 촉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큰 정신병원 한 곳에서 면 년 전에 '사회적 회복'에 관한 연구를 했다. 이 연구로, 환자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증세를 내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배운 까닭에 퇴원할 수 있었음이 알려졌다. 다시 말하자면, 환자들은 자신들의 망상과 주변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그릇된 시선이 일치하지 않음을 알아차릴 만큼 주변환경에 충분히 동화된다는 것이다. 환자들은 정신병적 수단에 기대려는 갈망을 버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에서 만족감을 찾으려 한다.
(2) 의도치 않은 혼란 상태를 처리하는 한 가지 방식은, 상호작용하는 사람들이 혼란의 표현적 함의를 이해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신호로 웃어넘기는 것이다. (앙리 베르그송의 웃음에 대한 에세이. 말실수 분석하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3) 이와 관련해 최근 치료 기법으로 활용되는 '사이코드라마'가 제기하는 또다른 쟁점이 있다. 정신의학적으로 연출된 무대에서 환자들은 맡은 배역을 꽤 효과적으로 연기할 뿐만 아니라 각본을 사용하지도 않는다. 환자들에게는 무대에서 재연할 수 있는 과거의 경험이 있다. 일단 환자가 한 배역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연기하고 나면 나중에 꾸며낸 연기를 할수도 있게 된다. 또한 환자에게는 중요한 타자가 환자 본인을 대하던 경험을 이용할 수 있어서 환자 자신일 때의 역할부터 타자의 역할로 연기 전환을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역할 전환 능력은 불가피한 경우에는 누구나 예견하고 발휘할 수 있다. 실제 삶에서 맡은 배역을 공연하는 법을 배우면서 우리는 말 상대가 보여주는 초기의 진부한 친밀성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음으로써 우리 나름의 공연을 꾸려나가는 법을 익힌다. 실제 삶에서 우리가 필요할 때 적절하게 배역 연기를 관리할 수 있는 것은 다가올 현실에 대비해 미리 학습해둔 '예기 사회화anticipatory socialization' 덕분이다. 자기에게 익숙한 행동 모델을 토대로 최면에 걸리기 쉬운 환자 역을 맡거나 '충동적' 범죄를 저지를 수도.
*개념 정의
'상호작용(대면 상호작용)'은 개인들이 마주 보는 자리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행동을 말한다. 만남encounter라는 용어를 써도 무방하다.
'공연'performance이라는 말은, 한 시점에 한 참여자가 다른 참여자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모든 행동으로 정의하겠다.
'배역part' 또는 '배역 연기routine'. 공연에서 전개되는 미리 정해진 행동 유형과 다른 시점에 연출했던 행동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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