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랑은 신화의 분류에 착수하면서 신화의 내용의 의미 작용 추구에 역점을 두게 된다. 그러면서 신화 속에 있는 형태론적인 것뿐만 아니라 신화의 내용이 가지고 있는 의미론적인 분야에 대해서 연구를 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뒤랑의 첫 번째 작업은 바로 해석학적 작업이라고 볼 수가 있다. 전통적으로 해석학이라는 것은 철학이라든가 신학적인 전통에서 상징과 신화의 내용을 해석해내는 것이다.
뒤랑의 작품이 '상형적 구조주의(Structuralisme figuratif)'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 것은, 상상계의 구조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그것의 의미론 역시 동시에 고려하면서 연구하겠다는 의도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에 대한 뒤랑의 탐구는 동시에 두 방향으로 행해진다. 하나는 형식적인 구조 면에서의 논리라든가 상상계가 가진 길항관계 혹은 융합관계 같은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 상상계에 존재론적인 가치와 정감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으로서, 이 정감적 가치는 공격적 요소라든가 융합적 통합을 추구하는 요소를 다 포함할 수 있다.
이러한 종합적인 관점에서 뒤랑은 상상계(l'imaginaire)를 커다란 두 체제로 분류했다. 그 중 하나는 낮의 체제이고 다른 하나는 밤의 체제이다. 두 체제는 서로 다른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고, 서로 다른 메타포를 사용하게 된다. 첫 번째로 낮의 체제에서는 상상력이 논리적이라든가 길항적 작용이라든가 모순관계라든가 대립관계를 보여주며, 밤의 체제에서는 상상력이 좀더 상호간에 관계를 맺으려 노력하든가 융합적이라든가 호의적이라든가 하나의 단위로 귀환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구조보다 체제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우리는 체제라는 말이 구조보다 훨씬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여야 한다. 체제라는 용어는 종국에는 인간이 세상과 자연에 대해서 맺고 있는 관계, 세상에 존재하는 방법을 보다 큰 범주에서 보여줄 수 있는 용어이다. 바로 그 이유에서 뒤랑은 체제보다 하위 차원에서 구조를 이야기하며, 그 구조는 체제와는 달리 셋으로 나뉘어 있다. 이 구조 분류를 위하여 뒤랑은 인간 동일성의 근거를 탐구한 생물학(더 구체적으로는 반사학)의 연구 성과를 좇아갔다.
뒤랑은 분류의 원칙을 위해 레닌그라드학파의 베흐테레프(W. Betcherev)가 정립한 반사학(réflexologie)에서 '지배 몸짓(gestes dominants)' 개념을 차용한다. 뒤랑은 인간에게서 몸짓(지배 반사)이 가장 근원적이라고 판단한다. 베흐테레프를 비롯한 반사학자들은 인간에게 세 가지의 '지배 반사(réflexe dominant, 다른 모든 반사들을 억제하는 반사)'가 있음을 밝혀내었다. 이들은 우선 갓난아이에게서 두 가지 지배 반사가 존재함을 발견했다.
첫 번째 지배 반사는 '자세(position)' 지배 반사로서, 인간의 균형을 유지시키는 반사이다. 만일 어린아이의 몸을 수직으로 세우면 그 지배 반사가 다른 모든 반사들을 조정하고 억제한다. 두 번째 지배 반사는 신생아의 '영양 섭취(nutrition)' 지배 반사이다. 이는 '입술로 빨아들이기 반사'와 '머리를 적절한 방향으로 위치시키는 반사'를 말한다. 신생아가 젖을 빨 때 영양 섭취 반사는 다른 반사들을 제어한다.
세 번째 지배 반사는 '짝짓기(copulation)' 지배 반사이다. 사실 이 반사는 성장한 동물 수놈을 통해서 연구된 반사이다. 이 지배 반사는 실험적인 증거가 충분하지는 않지만, 뒤랑은 이 난점을 정신분석학과 생리심리학에서 보충하고자 한다. 이들 학문들에서는 성적인 충동이 동물의 행동에서 매우 강력한 지배 요소임을 가르치고 있다.
뒤랑은 반사학을 길잡이로 삼아 원형들(archétypes)과 상징들(symboles)의 거대한 분류체계를 세운다. 그는 세 가지 지배 반사에 입각하여 상상계의 주된 내용물들을 세 가지의 구조(structure) 혹은 도식(schème) 그룹으로 분류한다.
분열형태 구조
이는 자세 지배 반사와 연관된다. 분열형태(schizomorphe) 구조라고 뒤랑이 명명한 것은 이 구조가 분열(分裂) 행위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왕홀(王笏)과 검의 원형들로 분화되는 분열과 수직화 도식들이 이 구조 속으로 분류된다. 여기서는 분열, 분할, 대조가 중시된다. 이 구조는 '영웅적(héroïque)' 구조라고도 불린다.
왜냐하면 이 구조가 영웅·선·전사(戰士)의 괴물·악·어둠에 대항한 싸움의 이미지들과 주제들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뒤랑에게 상상력(이미지화)의 핵심은 시간, 변화 그리고 죽음 앞에서 느끼는 불안의 극복이다. 상상력과 표상(représentation) 작용은 그 자체로 운명에 대한 저항(anti-destin)이다. 분열형태 구조에서 시간을 벗어나는 방법은 초월이다.
신비 구조
이는 분열형태 구조와 상반되는 구조로서, 영양 섭취 지배 반사와 연관되어 있다. 동화(同化), 동일시, 결합 행위가 이 구조의 특징을 이룬다. '신비적(mystique)'이라는 용어는 특별히 레비–브륄(Lévi-Bruhl)의 '신비적 참여(participation mystique)'라는 개념에서 빌어온 것으로, 이는 '참여'의 함의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하였다.
이 구조의 내용물은 '내면성'과도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 중심으로의 회귀, 틈을 막기, 끼워 넣기 이미지들이 이 구조의 극성(極性) 주위로 배열된다. 이 구조는 잔(coupe) 원형과 내면적인 깊이를 표현하는 이미지들로 분화되는 하강과 내면화의 도식들을 지니고 있다. 시간의 해독제는 실체의 안온하고 따뜻한 내부에서 찾고자 한다.
종합 구조
이 구조에는 상이한 요소들을 결합시키는 과정을 강조하여 '종합적(synthétique)'이라는 형용어를 부가하였다. 그런데 이는 정립과 반정립의 지양을 의미하는 헤겔(Hegel) 식의 종합과는 무관하다. 따라서 후일 뒤랑은 헤겔적인 함의를 피하기 위하여 '종합적'이라는 형용어 대신에 '산종적(散種的, disséminatoire)' 혹은 '드라마적(dramatique)'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 구조는 짝짓기 지배 반사와 결부된다. 무한한 반복의 힘을 표현하는 바퀴나 나무 원형으로 분화되는 리듬 도식들이 이 구조로 분류된다. 여기서는 중심의 원형이 상반되는 것들의 균형을 위한 열쇠로 작용한다. 시간과 운명에 대한 불안은 지속적인 리듬을 통해 극복하고자 한다.
여기서 뒤랑이 레비–스트로스에 비해 어떤 면에서 더 독창적인지 지적해보자. 뒤랑의 연구가 레비–스트로스의 연구와 다른 것은, 우선 뒤랑에게 있어서 신화라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인 상상력의 진정한 활동이며 원초적 인간 정신활동의 보편적인 표현양식이라는 것이다. 이 신화라는 것은 언어를 통해서, 즉 시라든가 문학이라든가 종교적인 담화를 통해서 표현될 수도 있지만 시각적으로도 가능하고 공간적으로도 표현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시각적으로 회화적이라든가 색채적이라든가 아니면 회화적 이야기를 통해서도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뒤랑이 레비–스트로스와 다른 점은(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라는 저술에서부터 잘 보여주듯이) 뒤랑은 이 상상계라는 범주에 모든 문화적 산물을 포함시켰다는 것이다. 즉, 그의 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는 원시 사회에 있어서의 신화만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의 문학이라든가 이 모든 것을 연구 대상으로 포함하는 것이다.
40여 년 전부터 상상계의 연구를 시작한 질베르 뒤랑에게서의 상상계 개념은, 우선 레비–스트로스의 형식적 구조주의보다는 훨씬 더 심오한 의미를 지닌다. 뒤랑의 신화의 개념은 훨씬 더 역동적이고 광범위해지며, 따라서 질베르 뒤랑의 신화 분석 대상은 언어적인 것, 시각적인 것을 모두 포함하는 보다 광범위한 것이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질베르 뒤랑과 레비–스트로스 (프랑스 문화와 상상력, 2004. 6. 15., 박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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