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가야트리 스피박
푸코, 들뢰즈의 대담을 인용하여 서구의 논의는 주체로서의 서구를 보존하려는 욕망이 은폐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주체로서의 유럽 중심의 역사가 서구의 법, 정치경제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서사화되어 있음에도 그들은 이것을 은폐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푸코는 권력을 주변을 점점 밝게 비추는 지점이라는 은유를 사용한다. 그것은 행위자의 공백에 유럽의 주체를 채운다는 것.
에드워드 사이드는 푸코의 권력개념이 계급의 봉기와 반항의 역할을 말소하도록 현혹하는 범주라고 비판한다. 지식인의 투명성에 함께 꿰매어진 주체는 착취자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 푸코의 논리에 따르면 제3세계 피억압자들이 제국과의 제휴를 통해 연대로 나아갈 수 있다면 그들은 그 자신이 처한 조건에 대해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제국의 반대편에 선 그들은 제국주의적 법과 교육의 인식론적 폭력에서 자신의 목로리를 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그들은 위계질서상 열등한 위치에 속해 있음에도 자신들의 사회적 존재에 진실로 일치하는 이해관계에 따르지 않고 지배집단의 이해관계를 위해 행동한다.
서발턴(subaltern)은 지배계층의 헤게모니네 종속되거나 접근을 부인 당한 그룹을 의미한다. 노동자, 농민, 여성, 식민지인 등이 하위주체라고 할 수 있다. 스피박은 (...) 이들의 경험은 담론의 장에 들어올 수도, 말로 표현하더라도 그 경험의 다층성은 담론화하는 순간 왜곡된다고 말한다. (...) 그들을 재현하는 대신 이들에게 말을 걸어 스스로 목소리를 내게 해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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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 (2012). 서발턴(Subaltern)의 재림. 실천문학, 19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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