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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색_히토 슈타이얼_안규철 역_워크룸프레스_2019

by jemandniemand 2020. 3. 1.

목차

다큐멘터리의 불확실성 원리: 다큐멘터리즘이란 무엇인가?
증인들은 말할 수 있는가?: 인터뷰의 철학에 대해
기억의 궁전: 기록과 기념비 ? 아카이브의 정치
조심해, 이건 실제 상황이야!: 다큐멘터리즘, 경험, 정치
실 잣는 여인들: 기록과 픽션
중단된 공동체: 쿠바의 집단 이미지
건설의 몸짓: 번역으로서의 다큐멘터리즘
예술인가, 삶인가?: 다큐멘터리의 본래성의 은어들
화이트 큐브와 블랙박스: 미술과 영화
유령 트럭: 다큐멘터리 표현의 위기
사물의 언어: 다큐멘터리 실천에 대한 유물론적 관점
공공성 없는 공론장: 다큐멘터리 형식과 세계화
후기


우리는 거칠고, 점점 추상적인 '다큐멘터리' 영상들, 흐리거나 어둡거나 흐릿한 이미지들에 둘러싸여 있고, 그것드은 그 자체의 흥분 이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후기 구조주의 이론들은 우리 모두가 글로벌 자본주의의 현실 속에 편입되어 있고, 이 공간 바깥에는 어떠한 순수의 도피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되풀이해서 가르쳐왔다. 우리는 말하자면 오래 전부터 텔레비전에 편입되었고, 우리가 그것들과 함께 살고 있는 입자 형태의 이미지들은 마치 빛을 발하는 먼지의 층처럼 이 세계를 뒤덮고 있으며, 그것드로가 세계는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다큐멘터리 개념의 불확실성

실재, 진실, 객관성 등의 단어들은 해병의 위장복 패턴처럼 불확실하다. 

 

브레히트의 여파로 다큐멘터리 영화 이론에서는 수십 년 동안, 직접적인 것보다는 반영의 거리가, 증거-효과(Evidenz-effekt)보다는 소외 효과가, 동일함보다는 차이와 지연이 선호되었다. 그것들이 의식의 형성을 촉진시킨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이 규범적인 호소는 그 자체가 또다시 독단적인 도식이 되었다. 근대적 아방가르드의 시대에 자신의 구성 방식과 생산 방식을 성찰적으로 공개함으로써, 스스로 만들었던 '기만의 맥락'에서 벗어나는 것이 비판적인 입장 표명으로 여겨졌다면. 이런 수단들 대부분은 변화된 정치 사회적 환경 속에서 효력을 잃었다.

 

특정한 상황에서 증언은 불가능해지며, 진실은 ‘진실의 정치’에 의해 만들어진다. 역사에 대한 경험은 그 경험의 스펙터클로 대체되고, 공동체는 중단되고, 공론장은 사유화되는 그곳에서, 다큐멘터리 이미지는 세계화와 글로벌 자본주의의 현실 속으로 우리를 편입시킨다. 우리는 더 이상 이미지들과 우리를 구별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다큐멘터리가 진실을 담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은, 다소 순진하고 부차적으로 들린다.

 

정치적 경험은 그럼에도 가능할 것이지만, 그러나 의도하지 않은 채로 가능할 것이다. 정치적 경험의 가능성은, 미학-윤리학 논문들이나 예상 가능한 폭력의 의례들 속에서가 아니라, 수단과 목적의 악순환으로부터 해방될 때에만 빛을 발한다. 그것은 아마 거의 모든 행동에 내재하는 예측 불가능함 속에 잠복해 있을 것이다.

 

세계에 대한 응시를 다시 가능하게 해줄 촬영의 위치를 탐색하고, 불가능함에도 존재하는 증언들을 들려주며, 의도하지 않은 순간 찾아오는 정치적 경험의 순간을 기다린다. 경제와 정치와 종교가 밀어붙이는 분열 앞에서는 “예술도 다큐멘터리즘도 사회의 접착제로 기능할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사물의 번역된 언어로서 빛을 발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역설적 과제를 갈망한다. “다큐멘터리 이미지의 주제는 그러므로 그것의 피사체도 아니고 이러한 리얼리티도 아닌, 대상이 그 앞에서 빛나게 할 수 있는 현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