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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critique d'art

새로운 리얼리즘에 관하여_보리스 그로이스_이유니_2020

by jemandniemand 2020.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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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방가르드는 실재를 탐색하는 데 완전히 성공한 적이 없었는데, 예술의 현실 – 아방가르드가 주제로 삼고자 한 예술의 물질적 측면 – 은 끊임없이 재미학화되었기(re- aestheticized) 때문이다. 이 같은 주제화는 기존의 예술적 조건인 재현을 벗어나지 못했다. 미술 제도의 세속적이고 사실에 입각한 측면을 주제로 삼고자 했던 제도 비판에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아방가르드와 마찬가지로 제도 비판도 미술 제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에 이러한 상황은 변화했다. 이는 인터넷 때문인데, 인터넷은 예술 생산과 유통의 주요 플랫폼으로 기능하던 전통적인 미술 제도를 대체했다. 이제 예술의 세속적이고 사실에 입각한, 다시 말해 ‘실재적’인 측면은 인터넷을 통해 주제화된다. 실제로 동시대 작가들은 인터넷을 활용하여 작업하는 것이 보통일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작품을 인터넷에 올리기도 한다. 특정 작가가 제작한 예술 작품은, 인터넷에서 그 작가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다른 정보, 이를테면 작가의 활동 이력, 그밖의 다른 작업물, 정치적 활동, 비판적 리뷰, 개인 신상 명세 등의정보와같은 맥락에서 검색된다. 작가는 예술을 생산하는 데 뿐만 아니라, 티켓을 구입하고, 식당을 예약하고, 사업을 경영하는 데에도 인터넷을 활용한다. 이러한 활동 모두는 인터넷이라는 하나의 통합된 공간에서 발생하며, 여기에는 다른 인터넷 이용자가 접근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잠재한다. 여기서 예술작품은 실재하는 세속적 개인으로서의 작가에 관한 정보와 통합되기에 ‘실재’적이며 세속적으로 된다. 예술은 인터넷상에서 특정 종류의 실천적 활동으로 나타난다. 실제 오프라인 세계에서 일어나는 실제 작업 과정의 도큐멘테이션으로서 말이다. 확실히 인터넷 상에서 예술은 군사기획, 관광 사업 자본 흐름 등과 같은 공간에서 작동한다. 무엇보다 구글은 인터넷 공간에는 어떠한 벽도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우리는 왜 그 사람이 이런 짓을 하려고 했는지를 자기 스스로에게 질문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이 질문에 답하려는 시도는 잠재적 살인자의 심리에 관한 일련의 환상, 추측, 투사(projection)를 낳는다. 이러한 투사로는 어떠한 최종 결론에도 이를 수 없지만, 동시에 투사는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오늘날 이 같은 현상은 미디어가 제공하는 이런저런 테러 행위에 대한 심리학적 설명들과 추측들에서 거의 매일 같이 목격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사후에, 즉 폭력적 테러의 과잉이 발생한 후에, 외부의 관찰자들은 폭력적인 행위의 주체가 일상의 현실을 불만스러운 상태로 살아갔다는 가정을 쉽게 받아들인다

 

예술을 테크네로 이해하는 것은 아방가르드나 여러 포스트아방가르드 작가의 기대와 밀접하게 연관했는데, 이러한 기대에 따르면 예술은 테크놀로지적 진보에 일정한 방향을 제시하여, 진보가 유토피아적 목적에 이르도록 하거나, 혹은 적어도 진보의 파괴적 측면을 상쇄하도록 할 것이었다. 우리 시대에, 이러한 소망은 파괴된 듯 보인다. 테크놀로지적 진보의 역동성은 진보를 통제하려는 모든 시도에 저항했다. 테크놀로지적 진보를 ‘현실’로 만들어온 것은 모든 ‘주체적’인 예술 기획이 행하는 통제에 대한 바로 이와 같은 저항이다. 동시대의 포스트-들뢰즈주의자, 신-디오니소스주의자, 가속주의자, 테크놀로지적 진보에 대한 ‘리얼리즘’의 찬미자가 그들의 감탄을 오로지 심리적인 용어들로 설명하는 데는, 곧 그 감탄을 자신들의 심리에 극도의 강렬함을 생산하는 자기 파괴의 황홀경으로 설명하는 데는 무언가 시사하는 바가 있다.

 

리얼리즘의 귀환은 심리적인 것의 귀환, 그리고 억압하는 힘으로서 경험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의 귀환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하겠다. 리얼리즘은 ‘평범한 사람들’ 이나 ‘노동자 계급’같이 예술 시스템 너머에 있는 여러 현실을 묘사하는 예술 형태라고 오인되고는 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예술 시스템은 이미 현실의 일부이다. 

 

 내면의, 심리적인 문제는 바깥으로 투사된다

 

작가와 미술가는, 리얼리스트가 되고 싶다면, 인간 심리에 대한 묘사가 순수 픽션이라는 의심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역사가 그들의 작업에 담긴 리얼리즘을 확증해줄 때까지 말이다.

 

출처: http://tigersprung.org/?p=23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