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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critique d'art

게임의 확장 증대된 가상현실 가능성과 한계

by jemandniemand 2020. 3. 5.

 

폰드스미스는 게임에 대한 언급을 덧붙여서 이렇게도 말한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처음에는 게임 안의 빛나는 무기와 사이버네틱 기술에 매료될 것이지만 점점 더 깊은 사회 경제적, 정치적 주제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게임의 정치성 자체를 놓고 보자면, 바람직하지 못한 지배와 억압의 정치와도 연류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물론 지배 이데올로기는 스스로를 당연한 것으로 현상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지배 이데올로기의 작동을 의식하지 못하고 지극히 자연적인 것으로 여기지만 말이다. 

 

게임이라는 매체가 발본적으로 요구하는 특징 중 하나인 (게임적) ‘몰입’과 ‘유희’는 일찍이 사회학자 서동진이 분석한 것처럼 신자유주의적 시공의 훌륭한 훈육의 논리가 되기도 한다. 또한 게임은 문화 연구자 마크 피셔가 좋지 못한 오늘날의 징후적인 정서 상태로 지적한 ‘우울증적 쾌락’을 곧바로 관통하는 매체이기도 하다. 마크 피셔는 자신의 책 ‘자본주의 리얼리즘‘에서 동시대 자본주의에서 나타난 특징적인 증상 중 하나로서 ’우울증적 쾌락‘이라는 정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반적으로 우울증을 특징짓는 것은 무쾌락 상태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상태는 쾌락을 얻지 못하는 무능이 아니라 쾌락을 추구하는 것 말고는 다른 무엇도 할 수 없는 무능으로 이루어져 있다. 학생들은 무언가가 빠져 있다고 느끼지만 오직 쾌락원칙 너머에서만 이 누락된 불가사의한 향락에 접근할 수 있음을 감지하지는 못한다.” 

 

문제는 게임적 몰입을 요구하는 게임이라는 매체가 플레이어의 반성적인 거리감을 도출하기 어렵다는 특징을 가진다는 점이다. 우리는 현실 자체가 되어버린 게임, 소통의 감각-자극 매트릭스에서 빠져나오는 일을 전제하지 않는다.

 

게임적 공간은 대체로 창백하고 닫힌 세계로 인용되는 것 같다. 이곳은 정치성이 소거된 도피적 가상공간이자 저해상도로 그려진 노스텔지어적 공간으로 묘사된다. 선명한 실재성은 부담스럽다. 그러나 게임 개발의 기술적 발전은 점점 더 선명하고 실제 현실과 같은 재현을 그려낸다. 그렇지만 끝내 현실의 과도한 정치성은 골칫거리가 된다. 

 

출처: http://www.critic-al.org/?p=54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