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나는 '자료'란 사건이나 사물이 아니라 항상 사건이나 사물에 대한 기록이나 묘사 또는 기억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거기에는 언제나 과학자와 그가 다루는 대상 사이에 끼어들어 원래의 사건을 변형하거나 재코드화하는 것이 있다.
(363)
정신 요법 그 자체는 글자 그대로의 뜻과 은유, 현실과 환상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탐험하는 다수준적 커뮤니케이션의 맥락이며, 실로 다양한 형태의 놀이, 연극, 최면이 치료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우리는 정신분열증 환자의 진술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것을 언급할 수 있다.
(1) 이중 구속 상황은 정신 요법의 무대와 병원 환경에 의해, 그리고 그 내부에서 만들어진다. 이런 가설의 관점에서, 정신분열증 환자에 대한 의학적 '친절benevolence'의 효과는 의심스럽다. 병원은 환자의 복지를 위해 존재하는 것과 똑같이 혹은 그 이상으로 병원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서도 존재하므로, 환자를 위해 '친절하게' 취해져야 할 행동이 실제로는 직원들에게 더 편하도록 의도되었을 때 그로 인해 가끔은 모순이 발생할 것이다. 그런데도 환자를 위해 편의를 제공하고 병원 활동이 환자의 편의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게 될 경우 환자의 정신분열을 발생시키는 상황은 계속 존재할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2) 이중 구속과 그것의 커뮤니케이션적 측면에 대한 이해는 치료 기술의 혁신을 이끌 수도 있다. 혁신이 무엇인지는 말하기 어렵지만, 우리가 조사한 것을 기초로 우리는 정신 요법에서 이중 구속 상황이 일관되게 발생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끔 이중 구속은, 의사가 환자의 병력에 나타나는 것과 유사한 이중 구속 상황을 환자에게 강요하거나, 환자가 의사에게 이중 구속 상황을 강요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무심코 일어난다. 때에 따라서는 의사가 의도적 또는 직관적으로 이중 구속 상황을 부과하여, 환자가 과거에 반응했던 것과 다르게 반응하도록 강제하기도 하는 것 같다.
나는, 정신분열증에 관한 실험적 이론이 학습 이론, 유전학, 진화론이라는 삼원적인 관련 과학에 끼친 영향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싶다. 이 가설은 먼저 간략하게 설명될 수도 있다. 본질적으로 이중 구속 개념은 일상적인 경험과 기본적인 상식에 호소한다. 가설에서 가장 먼저 도출된 명제는 학습은 언제나 형식적 특징을 갖는 어떤 맥락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학습 이론에서 말하는 도구적 회피의 연쇄가 갖고 있는 형식적 특징이나 파블로프 실험의 형식적 특징을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 이 가설은, 이런 구조화된 맥락은 또한 더 넓은 맥락 속에서 발생하고, 맥락들의 이러한 연쇄는 열려 있으며, 생각건대 무한한 연속이라는 개념에 의존하고 있다. - 메타 맥락
우리는 정신분열증 환자의 커뮤니케이션은 학습되는 것이며 이런 종류의 지속적 외상 경험의 결과로 습관화된다는 가설을 연구하고 있다.
이것이 이중 구속에 대한 모든 것이다.
문제는 더 큰 맥락이 더 작은 맥락에 영향을 미치는 가능성을 무시함으로써 단순화된다는 것이다.
(426) 이중구속(1969)
내게 있어 이중 구속 이론은 그런 문제들에 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예였으며
(490) 사이버네틱스의 인식론
정보를 처리하거나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고' '결정한다'고 말하는 총체적인 자기-교정 단위는 육체 또는 일반적으로 '자아' 혹은 '의식'이라고 불리는 것의 경계와 전혀 일치하지 않는 경계를 가진 시스템이며, 또한 중요한 것은, 사고하는 시스템과 흔히 알려진 '자아' 사이에 다양한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주목하는 것이다.
(1) 그 시스템은 '자아'가 흔히 그렇다고 가정되는 것처럼 초월적 실체가 아니다.
(2) 개념들은 차이의 변형들이 인도되는 인과적 통로의 네트워크에 내재한다. 모든 경우에서 시스템의 '개념'은 적어도 구조적으로 이원적이다. 그것들은 '충동'이 아니라 '정보'다.
(3) 이러한 통로들의 네트워크는 의식으로 경계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무의식적 정신 작용 - 모든 자율적인 것과 억압된 것, 모든 신경과 호르몬 - 의 통로를 포함할 수 있도록 확장한다.
(4) 네트워크는 피부로 경계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보가 이동할 수 있는 모든 외부 통로들을 포함하고 있다. 네트워크는 그런 정보의 '대상'에 내재해 있는 효과적인 차이들 역시 포함하고 있다. 네트워크는 원래 사물과 다른 사람들 - 특히 우리 자신의 행동 - 에 내재해 있는 차이들의 변형이 이동하는 소리와 빛의 통로도 포함하고 있다.
잘 알려진 인식론의 기본적인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엔 틀린) 견해들이 서로를 강화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잘 알려진 초월의 전제를 포기할 경우, 즉시 그것을 대체하는 것이 육체에 내재한다는 전제다. 그러나 사고하는 네트워크의 대부분은 육체 밖에 있기 때문에 이런 대안은 받아들여질 수 없다. 이른바 '정신-육체'의 문제는 논의가 역설을 향하도록 강제한다는 측면에서 잘못 놓인 것이다. 만약 정신이 육체에 내재한다고 가정된다면, 정신은 반드시 초월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만약 초월적이라면, 그것은 반드시 내재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등등..
이와 마찬가지로 만약 우리가 '자아'로부터 무의식의 과정을 배제하고, 그것을 '자아-이질적ego-alien'이라 부른다면, 무의식의 과정들은 '충동' 및 '힘'과 같은 주관적 색채를 띠게 될 것이며, 그리고 이러한 유사 역동적 속성은 무의식의 '힘'에 '저항'하려는 의식적 '자아'에까지 확대될 것이다. 그로 인해 '자아' 그 자체는 겉으로 보기에 '힘'을 조직한 것이 된다. '자아'를 의식과 동일시하는 일반적 개념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생각은 '힘'이라는 개념으로 나아가게 되며, 이러한 오류는 다음에 축색돌기는 '충동'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으로 뒷받침된다. 이런 혼란 속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기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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