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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에 대한 노트_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알렉산더 클루게_김수환 유운성 역_문학과지성사

by jemandniemand 2020. 4. 15.

 

목차

서문_옥사나 불가코바
영화 <자본>을 위한 노트: 1927~28년의 작업노트 중에서_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이데올로기적 고대로부터 온 소식: 마르크스-에이젠슈테인-자본_알렉산더 클루게

 


에이젠슈테인은 자신이 사유를 보이도록 만들고 그것을 감각적으로 느껴질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언어를 발명했다고 생각했다. 이와 동일한 차원에서 사물들의 병치, 사물들의 생산과 유통, 인간관계를 변형하고 조종할 수 있는 사물들의 능력으로부터 발생하는 연상적 사슬들을 연구하는 영화가 구상되었던바, <자본>이 바로 그것이다. 

에이젠슈테인의 몽타주는 (조이스와 프로이트를 따라) 인물들의 무의식 속으로 침잠하지 않는다. 에이젠슈테인은 실크 스타킹 광고로부터 겨드랑이에 누에고치를 품어야 했던 인도 여인들로 건너뛰고 싶어 했다. 여기서 사물은 기호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들의 덩어리로서 나타난다. 

 경험을 전달하기 위한 가장 유효한 방식으로 간주되어 온 허구적 내러티브는 여기서 결정적으로 억압된다. 그 대신 사물 스스로 말하기 시작해야 하고, 텍스트 없는 기억술의 기록이 되어야 한다. 그런가 하면, 감정은 개인적인 것이 아닌 사회적인 경험으로 느껴져야 한다. 

이는 인물의 노이로제적 심리와 주관주의, 가족 서사를 대체하기 위한 새로운 내러티브 전략으로서, 트레티야코프가 제안했던 '사물의 전기' 개념과 가까운 것이면서 오늘날의 '사물 이론'과도 일맥상통하는 생각이다. 후자는 어떻게 죽은 사물들이 살아 있는 것들을 결정하고 그것들의 관계를 (탈)형성하는지를 연구하는 이론으로서, 물질세계를 기호, 상징, 담론, 혹은 감응으로 몰고가는 문화의 발달과 그것을 둘러싼 온갖 [문화적] 이론들에 대한 반작용으로 볼 수 있다. 

뤼시앵 레비-브륄의 '전 논리 이론' . 시간적이고 인과적인 관계보다 공간적인 관계가 더욱 중요하고, 현상들 사이의 관계가 닮음과 대조, 인접의 원칙에 따라 구축되는 독특한 원초적 논리를 가리킨다. 

 

<10월>과 <자본>의 경험 이후에 쓴 에세이 "영화 형식에 대한 변증법적 접근"(1929)에서 에이젠슈테인은 '겹쳐 포개기'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다. 모든 장면, 시간적 공간의 전 층위가 작가와 관객의 상상과 기억 속에 '동시에' 한꺼번에 현전하는 방식에 관해 말하기 시작했다. 

세계의 시각적 다양성을 아카이브로 바꾸어놓기.

 

이 물건 더미를 그는 현대적인 큐레이팅 프로젝트로 바꾸어놓음. 사유는 책과 달리 몽타주가 그렇듯이 인과적 연결이 아닌 연상적 연결을 따른다. 사유는 선형적, 통시적이기보다는 나선적, 구체적, 공시적이다. 공 모양으로 된 책. 

비선형적으로 전개되는 하이퍼텍스트 모델을 예견한다. 

요컨대 그것은 개인적인 기억에 고착되어 있을 뿐 아니라 집단적인 문화적 전통 속에도 뿌리박혀 있는, 예측 불가능한 연상들의 종류에서 그 차원을 변경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당연히 이런 종류의 텍스트를 읽는 작업은 독자로 하여금 저자의 사이클을 반복할 것을 요구한다.

 


특정한 행위가 전개되는 사소한 연쇄 고리를 선택한다. 가령, 어떤 사람의 하루. 그로부터 일탈이 느껴질 수 있도록 마치 캔버스에 그리듯 세밀하게 묘사한다. 오직 그 목적으로, 즉 사회적 관례, 일반화, 그리고 <자본>의 테제들이 연상 순서에 따라 전개되어가는 것을 비판할 목적으로. 주어진 우연적 상황에서 시작해 그것을 개념으로 일반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