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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적 파상력, 김홍중, 문학동네, 2016

by jemandniemand 2020. 4. 28.

목차

프롤로그

1부 몽상과 각성
1장 미래의 미래
2장 마음의 부서짐: 세월호 참사와 주권적 우울
3장 몽상공간론: 골목길 풍경과 노스탤지어
4장 리스크-토템: 위험사회에서 아이의 의미론
5장 사랑의 꿈과 환멸: 신경숙 문학에서 ‘빈집’의 테마
6장 꿈과 사회

2부 생존과 탈존
7장 서바이벌, 생존주의, 그리고 청년세대
8장 동아시아 생존주의 세대의 얼굴들
9장 탈존의 극장
10장 진정성의 수행과 창조적 자아에의 꿈

3부 사회와 마음
11장 소명으로서의 분열
12장 사회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13장 사회적인 것의 합정성
14장 마음의 사회학을 이론화하기

참고문헌

 


파상이란 기왕의 가치와 열망의 체계들이 충격적으로 와해되는 체험을 가리킨다. 21세기는 세계적인 차원에서뿐 아니라 한국사회의 수준에서 보더라도, 근대성의 여러 이념적, 제도적, 미학적, 윤리적, 정치적 건축물들이 깨져 변형되는 구조적 파상의 시대다. 

일상을 떠도는 막연하고 애매한 불안과 공포의 정서, 사회적인 것의 해체에 대한 실감과 예감 속에서도 파상의 만연된 분위기는 감지된다. 파상의 시대는 문명사적 변동기이며, 대안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과거의 꿈들이 자신의 한계를 드러내며 문제화되는 시기다. 파상의 시대는 문명사적 변동기이며, 대안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과거의 꿈들이 자신의 한계를 드러내며 문제화되는 시기다. 또한, 파상의 장소는 과거의 몽상이 파괴되는 곳일 뿐 아니라 아직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미래의 꿈이 태동하는 곳이기도 하다. 

 

파상력의 반대편에는, 부재하는 대상을 허구적으로 현존시키는 능력인 상상력이 있다. 파상력은 구성이 아니라 파괴의 방향으로, 질서가 아니라 카오스의 방향으로 활동한다. 상상력의 최고치가 꿈이라면, 파상력은 깨어남, 즉 각성의 순간이 발휘된다. 꿈에서 깨어날 때, 우리는 몽상세계의 난잡한 이미지들이 깨지고 흩어져 폐허로 부서져내리며 다른 세계가 열리는 충격을 경험한다. 이 충격은 새로운 인식가능성의 확장을 가져다준다. 꿈에서 깨어나는 체험에 원형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파상력은 능동적 행위력이라기보다는 수동적 '감수력'에 더 가깝다. 일차적으로 파상력의 주체는 행위자가 아니라 겪는자patient이다. 우리는 자발적 의지를 가지고 꿈에서 깰 수 없으며 깨어남은 우리의 의지를 초월하여 도래하는 사건적 성격을 갖는다. 

하지만 파상력에는 이런 수동적 겪음의 힘을 넘어서는 능동적 요소 또한 내포되어 있다. 각성 이후의 체험을 중시했던 벤야민과 달리 나는 각성 직전의 체험을 더 중시하고 싶다. 그것은 우리가 실제로 종종 체험하는 '가위눌림'이다. 가위눌림 속에서 우리는 깨어남과 꿈 사이의 회색지대에서 짓눌린 채 마비된다. 우리는 그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지각하고, 그로부터의 자유를 욕망한다. 몸과 정서를 덮쳐오는 부자유와 공포의 느낌을 떨쳐내고자 달아나거나, 머리를 흔들거나, 비명을 지르거나, 발버둥을 치면서, 꿈의 마력을 떨쳐내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은 곧바로 깨어남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깨어남의 과정이기도 하고,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것 같은 불안의 시간, 이대로 꿈의 암흑 속으로 떨어져내려갈지 모르겠다는 두려움의 시간이기도 하다. 파상력은 이때 솟구치는, 미약하지만 필사적인 힘의 총체, 이 마비적 몽환의 장을 벗어나겠다는 몸부림이다. 그리고 깨어나 우리는 식은땀을 닦고, 부서져내리는 꿈의 잔해와 가위눌림의 파편들을 바라본다. 

 우리 시대의 상상력은 기업에서 훈련시키고, 자기계발 속에서 육성되고 실현되는 목적 합리적 행위의 한 유형으로 전락하여, "측정가능한 측정" 시스템의 내부에 포섭되었다(Gielen, 2013:27). 그것은 천박해졌고, 진부해졌고, 개인화되었다. 그것은 세계의 구성, 구축, 연결, 건설에 노골적으로 복무하고 있으며, 소위 창조계급이나 창조경제를 통해 생성되어 있는 제도적, 물질적, 문화적 회로들 속에서 (재)생산되고 가치화된다

밀스가 말하는 사회학적 상상력은 미래를 약속하는 힘이지만, 파상력은 어떤 미래도 약속하지 못한다. 예언하지도, 계몽하지도, 도덕적 훈계를 가하지도 못한다. 

대신 사회적인 것이 끓어오르며 새로운 길을 뚫는 장소, 그 어딘가에서 예기치 않은 희망의 씨앗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성되는 곳을 증언하기를 소망한다. 이런 점에서 파상력은 실천론적이고 단자론적monadologique이다. 파상력의 주체에게 총체성은 오직 세부detail에, 한알의 밀알에, 하나의 영상에, 하나의 순간에, 하나의 실천에 표현되어 있을 뿐이다. 

 

10장 진정성의 수행과 창조적 자아에의 꿈 

(시심의 사회적 구성부터)

 

앞서 언급한 것처럼 P는 2007년에 X대학교 국문과 학생들로 구성된, 느슨한 사적 모임 혹은 "생활공동체"로 출발하였지만, 2008년에 접어들면서 동인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이를 구현하는 실질적 장치들을 구비하게 된다. 그 내적 장치는 정기적으로 운영되는 '합평회'이고, 외적 장치는 '동인지'의 출간이다. 이런 기본적 틀(동인정체성, 동인지, 합병회)을 장착하게 된 이후 P는 구성원들의 변동과 무관하게 자신을 재생산할 수 있는 하나의 사회적 '시스템' 혹은 구조화된 사회적 '공간'으로 형성된다.

 우선, 동인지를 만들고 이를 판매하는 과정은 P가 집합적 자기를 연출하는 공식행사이자 내적 연대감을 강화하는 세속적 의례이다. 이들은 주로 도서관 근처,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장소에 테이블과 의자를 설치하고 주변의 벽에 <시문학동인 P>라는 문구를 인쇄하여 부착함으로써 공연 공간을 구성한다. 그리고 하나의 팀을 이루어 이에 적합한 외양appearance과 매너manner를 유지하면서 '시 쓰는 자'라는 배역을 수행한다(고프먼, 2016: 36-44). 자신들의 활동을 공식적으로 드러내는 이런 "자아연출" 속에서 이들의 정체성은 시의 텍스트적 테두리를 범람하여, 시인임을 연기하는 얼굴과 신체, 몸짓과 분위기 전체에 의해 수행적으로 구성된다. 판매 부스를 지나쳐가는 행인들로부터 획득하는 수많은 인상은 이들에게 즐거움, 놀람, 혹은 각성과 같은 여러 정서적 반응을 촉발시킨다. 이들은 이런 우발적 인상들로부터 그들의 시를 읽어줄 독자들의 지평을 상상적으로 확장시키기도 한다. "이렇게 시집을 사가는 사람들을 굉장헤 유심하게 봐요. 어떤 사람들인가를. 저 사람들이 내 시를 읽겠지, 다른 동인들의 시도 읽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독자들을 보는 경험을 해요. 그게 저한테는 굉장히 즐거운 일이었거든요". 며칠동안 이어 진행되는 판매가 끝나고 대개 그 주말에 벌어지는 "잔치"(동인A-3)인 출판기념회에는 과거와 현재의 동인들이 대거 참석하여 동인지에 실린 작품들에 대한 새로운 비평과 감상을 교환하고, 판매과정에서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운다(동인G-이메일). 

 동인지의 발행과 판매가 연중행사라면, 합평회는 훨씬 더 빈번하고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 상황을 제공한다. 이들이 합평을 위해 모이는 장소는 대학에서 좀 떨어진 시장 주변의 지하주점이다. 90년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민속주점에서 저녁 7-8시 경에 모여 술을 겸한 식사를 하면서 각자가 써 온 시를 낭송한다. 주연은 대개 2차로 이어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새벽 늦은 시각까지 토론은 계속된다. 합평이 시작되기 전에 가벼운 신변이야기나 담화들이 오가는데 사실 이런 한가로운 외관 뒤에는 긴장과 흥분이 숨어 있다. 동인 B는 이 시간이 "제일 기대되는 식나"이라고 토로한다(동인B-1). 동인 C 역시 합평을 "복권"에 비유하면서(복권의 숫자를 확인하기 전의 흥분을 의미한다), 자신의 시를 타인들이 어떻게 읽어줄지에 대한 강한 기대와 불안을 느낀다고 말한다(동인C-1). 이런 은밀한 정서적 고양은 합평에서 진행되는 상호작용의 강도와 성격을 잘 드러내준다. 

 합평회는 시를 쓰는 행위와 시를 평가하는 행위라는 두 가지 상이한 노선에 배역을 부여하여, 한 사람은 쓰는 자로 다른 사람들은 읽는 자로 연기하게 하는 공연이다(합평에는 가끔, 이들이 '뮤즈'라 부르는 손님들이 관객으로 참여한다. 손님들은 합평을 관람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이에 참여한다). 배역은 돌아가며 바뀌고 결국은 모두가 읽는 자와 쓰는 자의 역할을 수행해 보게 된다. 두 노선의 분리는 엄밀하게 말하면 합평 이전에 이미 가동되고 있는 글 쓰는 주체에 내재하고 있다. 즉, 시를 쓴다는 것은 쓰는 매 과정에서 타자(독자나 비평가)의 시선으로 자신이 쓰는 것을 검토하는 과정을 내포한다. 글 쓰는 주체는 '쓰는 자'와 '읽는 나'의 분리 속에 있는 존재이다. 습작이란 순수한 씀이 아니라, 씀과 읽음의 교차운동이다. 그런데 합평회는 글쓰기에 내포된 이런 구조적 분리를 사회적 수준에서 결정적으로 물질화한다. 자신이 쓴 시를 타자들 앞에서 낭송함으로써 시적 능력, 재능, 체험, 열정, 시심을 객관화하고, 이처럼 외화된 작품에 대한 타인들의 평가를 견디어내도록 하는 것이다. 미드(Mead)를 빌려 말하자면, 시인의 주체적 자아(I)의 발현적 힘, 자발성, 충동, 욕망이, 비평을 통해 관철되는 문학적 규범, 규제, 관습과 같은 대상화된 자아me의 질서와 갈등하면서 시적 자아가 생성되는 과정이 바로 합평을 통해 이루어지는 정체성 구성의 핵심이다(Mead, 1934).

 합평회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거의 대부분 '시적인 것'에 집중되어 있다. 시적인 것과 시적이지 않은 것의 차이는 소통의 복잡성을 감축시켜 초점 잡힌 상호작용을 유도하는 코드이다. 사회적 사건, 정치, 경제적 사안이 시의 매개나 필터링 없이 토론대상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들은 시적인 것과의 여하한 연관을 획득함으로써만 소통에 흡수될 수 있다. 합평에서 이들이 나누는 거의 모든 주요 대화는 그리하여 동인들이 창작하여 낭송한 특정 시의 전체적인 구성에 대한 논평, 시의 장점과 한계의 분석, 혹은 그 시가 불러일으키는 미적 감각과 인상에 대한 토로, 시에서 사용된 테크닉의 적절성과 효과에 대한 평가, 이런 시를 쓰게 된 동인의 상태에 대한 추론, 그의 과거 시와 현재 문제가 되는 시의 비교, 이 시에서 구사된 것과 유사한 시풍()의 계보에 대한 추론 등으로 이루어진다. 이를 통해 그 시가 얼마나, 어떤 점에서, 왜 좋은 시 혹은 나쁜 시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나간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시적 담론에 인격적 관심이 깊이 개입한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오랫동안 서로의 시를 읽어왔고, 시를 통해 각자의 생활을 읽어왔다. 시는 내면의 상태나 근황, 혹은 심경의 변화 등을 보여주는 인간적 징후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시적인 것에 대한 논의는 깊은 관점에서 인간적인 문제들에 대한 소통, 더 나아가 '테라피'의 성격을 띠기도 한다

 합평회의 상호작용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평가되며 축적되는 것은 시와 연관되어 있고, 시적인 것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문화자본, 즉, '시적 자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자원의 형태이다. 시적 자본은 전공, 등단여부, 수상여부, 명성, 문학적 소양, 시적 표현력, 시에 대한 감식안, 공식 비평의 언급, 시와 연관된 예술형식들에 대한 문화자본 등을 모두 포함한다. P의 멤버들 사이에서 시적 자본의 분포는 특정한 사회적 경계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하나는 X대학 국문과와 그 외부라는 경계이다. 국문과 출신들은 P를 설립한 창립멤더들이기도 하고, 또 가장 오래된 구성원들이라는 점에서 상징적인 중심성을 부여받고 있다. 더 나아가서 이들은 대학원에서 문학을 전공하면서 획득한 풍부한 지적 자원들을 가지고 합평에 참여하기 때문에 이들이 구사하는 비평적 어휘와 감식안은, 문학 수업을 받아보지 못한 채 혼자서 습작하며 시를 읽어온 동인들의 그것과 차이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 차이는 양자 모두에게 인지되고 자각되고 있다. 동인 B는 처음 P의 합평회를 하고 난 이후의 감상을 이렇게 기억한다. "저희가 하던 합평은 거의 인상비평 수준이었죠. 느낌은 이러저러한데 정확히 왜그런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P에서는 그것을 다 언어로 표현하더라구요. (...) 그러니까 자기 언어로 얘기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동인 B-1). 시가 만들어낸 미적 쾌감을 분석적 언어로 표현하되, 그것이 자신의 스타일과 관점으로 녹아들어 있는 상태가 바로 자기 언어로 시를 논하는 상태라면, 그것은 B가 느낀 시적 자본의 낙차를 표상하고 있다. 

 등단 여부는 이보다 훨씬 더 결정적인 경계로 작용한다. 유일한 등당자인 D는 여러 동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설득력을 갖고 타인들의 시에 대한 매우 직설적이고 경우에 따라서 거칠어보이기도 하는 비평의 언어를 던진다. 그가 등단했다는 사실은 이런 감식안과 그것의 표현능력에 제도적 실정성을 부가한다. 등단한 동인의 비평적 언사에 대한 다른 동인들의 태도는 미묘하게 수용적이다. 상처를 받는 경우도 있지만, 그 언사들의 적절함과 유용성에 대한 내적 승인이 존재한다. 이런 점에서 합평회라는 의사소통 공간은 시를 좋아하는 청년들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시를 즐기는 낭만적 자리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치밀한 분석과 해석, 그리고 냉정한 평가가 이루어지는, 차별적 시적 자본을 가진 행위자들의 경연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합평회는 이처럼 관계의 수평성과 위계적 성격을 동시에 갖는다. 

 정기적인 합평회에 참가하기 위해 이들은 지속적으로 시를 생산해야 한다. 시는 이들에게 합평의 "입장료"이다(합평-10월 18일). 시를 써가지 않으면 합의된 약속을 어기는 기분을 느끼고, 동료들의 은근한 눈총을 받기도 하며, 더 나아가서 자신에 대한 존중심에 손상을 입는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일상에서 시를 생산할 수 있는 모종의 매커니즘, 일종의 체화된 성향을 확립해야 한다. 불쑥 치밀어 오르는 시적 영감만으로는 격주에 한 번씩 펼쳐지는 합평회에 자신 있는 작품을 들고 나갈 수 없다. 시를 중심으로 살고, 시를 상상하고, 시적으로 현실을 바라보고, 자신을 관찰하고, 떠오르는 시상을 메모하여 이를 작품으로 발전시키는 습관, 한 동인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시적으로 생각하는 버릇"(동인B-1)이 형성되어야 한다. 동인지의 발간을 준비하면서 또한 격주에 한 번씩 합평에 참여하면서, 시심이라는 심적 에너지는 이처럼 일상 속으로 체계화되고 동인들의 자아에, 마음과 몸에 스며들어 온다. 예외적이고 폭발적인 특정 모멘트에 솟아나는 시적 도취가 아니라 하나의 하비투스로 전환되어가면서 삶의 스타일이나 태도로 체화되어 가는 것이다. 이들이 쓰는 시(텍스트)는 이처럼 구성된 시심이 표현되어 나오는 '빙산의 일각'인 셈이다. 시의 형식으로 정련되어 나온 한 줌의 언어 아래에는, 이들의 실천과 실천을 이끌어 낸 마음의 역동이 뒤엉켜 흘러가는 시적 일상성이라는 체험세계가 존재한다. 시는 시적 삶의 한 부분이다.